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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이야기

수동변속기 예찬론 - 왜 수동변속기를 찬양하는가?

by 여만창 2018. 5. 13.



  한때 수동변속기가 주류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자동변속기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비주류로 밀려버렸고, 우리나라 승용차 시장에선 거의 멸종 직전의 상태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많은 자동차매니아들은 여전히 수동변속기에 열광한다. 나처럼 자동변속기에 반감을 갖고 수동변속기라면 무조건 찬양하는 사람부터 최신 자동변속기의 우위를 인정하면서도 수동변속기 역시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 수동변속기 차를 사고 싶진 않지만 그 장점을 인정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정도는 다르지만 대부분은 수동변속기에 호의적이다. 도대체 왜 수동변속기를 좋다고 하는 걸까? 불편하고 다루기 어려운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었던가? 일반인들 입장에선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럼 왜 저들이 수동변속기를 좋게 말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 참고로 아래 나열된 이유들의 순서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으며, 그냥 떠오르는 대로 썼다.



※7단 이상의 다단화 자동변속기와 듀얼클러치변속기(DCT)는 이하 '최신 자동변속기'라고 부르고 6단 이하 일반 토크컨버터식 자동변속기는 이하 '일반 자동변속기'라고 부르겠다. 따지고 보면 DCT는 자동화 수동변속기이긴 한데... 편의상 이하 최신 자동변속기라고 퉁쳐서 부르겠다. 수동 면허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1. 저렴한 가격


  우선 자동변속기보다 저렴하다. 간단하게 실례를 들어보자. 자동변속기를 추가했을 때 기아 모닝은 125만원, 봉고는 112만원, 현대 벨로스터는 180만원을 추가로 더 내야 한다. 반대로 말하면 수동변속기를 선택했을 때 그만큼의 돈을 아낄 수 있다는 말이다. 벨로스터처럼 최신 자동변속기가 적용된다면 당연히 일반 자동변속기보다 더 비싸다. 이런 가격경쟁력은 수동변속기의 큰 장점이다. 이건 기술로 커버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가격 면에선 수동변속기가 절대적 우위다. 경제성이 중요한 상용차에서 수동변속기가 많이 쓰이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저렴한 가격이다. 최대한 싸게 사야 그만큼 돈을 아끼지!



2. 우수한 연비와 동력성능


현대 아반떼의 제원표. 수동과 자동의 연비를 비교해보자.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수동변속기는 엔진과 변속기, 변속기와 차축 사이의 연결이 직관적이기 때문에 엔진의 동력을 바퀴로 좀 더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일반 자동변속기는 토크컨버터에서 적정 단수를 선택하고 단수를 바꿔주는 단계가 필요하지만 수동변속기는 직관적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자동변속기보다 연비가 좋고 동력성능이 더 뛰어나다. 그러나 최신 자동변속기는 수동변속기를 뛰어넘는 효율과 동력성능을 보여주면서 이를 옛말로 만들고 있다. 적어도 공인연비에서는 근소하게나마 수동에 앞서고(운전자나 환경에 따라 실주행연비는 여전히 수동이 앞서기도 하는 모양이다) 컴퓨터제어의 빠르고 정확한 변속이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최신 자동변속기가 아닌 일반 자동변속기에 대해선 여전히 수동변속기가 우위를 갖는다.


  이는 곧장 상용차에 수동변속기가 많은 이유와도 연결된다. 기름을 적게 먹으면서 힘이 좋으니 수동변속기를 택하는 것이다. 최근엔 수입을 중심으로 덤프와 트랙터 같은 대형 상용차에도 자동변속기가 대세가 되었지만 일부 소수 운전자들은 험로에서의 활용을 이유로 일부러 수동을 택하기도 한다. 험로를 달릴 일이 많은 군용차도 같은 이유에서 최신 자동변속기를 끼울 게 아니라면 운전자가 노면 상황에 맞게 컨트롤이 가능한 수동이 더 낫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스포츠카에도 높은 동력전달 효율을 이유로 수동변속기가 많이 채용된다. 성능이 최우선되는 차종이니 당연한 얘기다. 최근엔 슈퍼카나 고가의 스포츠카를 중심으로 최신 자동변속기가 적극적으로 달리고 있으나 자동변속기의 성능이 좋지 못했던 예전엔 스포츠카는 수동이 절대 진리였다.



...라며 "그런 건 차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츠키군


3. 가벼운 무게


  수동변속기는 자동변속기에 비해 기계적인 구조가 덜 복잡하고 무게도 더 가볍다. 현대 아반떼 스포츠나 벨로스터는 수동변속기 모델이 자동변속기 모델에 비해 약 30kg 정도 더 가볍다. 무게가 가벼우면 동력성능이 더 좋아지고 연비 역시 더 좋아진다. 하지만 일반 운전자들이 저 정도로 효과를 체감하기엔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매 1kg이 아쉬울 정도로 경량화가 중요한 스포츠카/모터스포츠라면 저 정도면 상당한 차이다. 이 역시 태생적인 구조에서 오는 차이이니 기술력으로 극복하기 힘든 수동의 절대우위다.



4. 자동변속기에 비해 뛰어난 정비성과 내구성


  변속을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직접 하니 자동변속기에 비해 구조가 상대적으로 간단하고 덜 복잡하다. 이는 정비성과 연결된다. 고치기 쉽고 비용도 덜 든단 얘기. 또한 수용할 수 있는 성능의 한계가 더 높고 내구성이 좋아서 고성능 튜닝에도 잘 어울린다. 자동차 제조사가 스포츠카를 제작할 때 엔진 성능에 맞는 자동변속기를 찾지 못한 경우에 수동변속기를 끼우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튜너들이나 자동차 튜닝을 즐기는 매니아들은 엔진 성능에 맞춰 세팅이 상대적으로 쉽고 출력을 잘 수용할 수 있는 수동변속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5. 멋있으니까


  농담으로 하는 소리지만 이런 감성적이고 감상적인 요소도 의외로 중요하다. 차에 대한 만족도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분노의 질주 같은 자동차영화나 이니셜D 같은 자동차만화를 보면 박진감 넘치는 추격씬/배틀씬에서 등장인물들이 찰지게(?) 변속레버를 조작하며 차를 손발 다루듯이 하는 것을 보면 참 멋있어 보인다. 스티어링휠에 손을 고정한 채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패들시프트나 조작하는 것보단 훨씬 동적이고 볼만하다. 물론 서울 같이 시도때도 없이 차가 막히거나 부산처럼 오르막이 많은 동네라면... 흠... 돔이나 타쿠미라도 귀찮지 않을까.



수동변속기는 3개의 페달로 조작한다. 엑셀, 브레이크, 그리고 자동변속기엔 없는 제3의 페달이 있다.



6. 운전재미


  최신 자동변속기가 수동변속기의 장점을 상당 부분 잠식한 요즘에 와선 이 운전재미가 수동변속기 최고의 장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최신 자동변속기가 성능이 더 좋고 연비가 더 좋다고 해도 이 점만큼은 수동변속기를 따라올 수 없다. 변속기를 조작하는 손맛과 왼발로 클러치를 조작하는 맛은 자동변속기에선 절대 느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동변속기의 수동모드나 패들시프트로 흉내는 내볼 수 있지만 결코 똑같지 않다.


  자동변속기는 '변속'이라는 주행의 중요한 부분을 통째로 떼다가 기계에 맡겨버리지만 수동변속기는 운전자가 주도권을 쥔 채 차를 통제한다. 거대한 기계이자 육중한 쇳덩어리를 내 손짓과 발짓으로 조종하고 있다는 느낌, 내가 조작하고 있는 기계와 일체가 되는 느낌은 운전을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으로 만들어주는 동시에 자동변속기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성을 선사한다. 이에 비해 오토 차량은 컴퓨터가 제어하는 쇳덩이에 올라타 방향과 속도만 내가 정할 수 있을 뿐이다. 패들시프트는 그냥 장난감 같다.



  그까짓 감성이 얼마나 중요하냐 할 수 있지만 인간이 감성은 없이 효율과 능률만 추구한다면 슬프게도 로봇과 다를 게 없다. 예술도 존재 이유가 없다. 감성이 이렇듯 중요하기 때문에 자동차 제조사들도 실내 소재의 질감, 터치와 버튼의 조작감 등 감성적인 요소에 신경을 많이 쓴다. 결국 인간이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계가 알아서 해주지 않기 때문에 스틱 운전자는 운전 중 맞닥뜨리는 여러 상황에 맞춰서 일일이 대응해줘야 한다. 오르막길이 나타나면 아래 단수로 내려줘야 하고, 급가속을 하고 싶다면 다운시프트를 해줘야 하고, 엔진회전수와 속도가 높아지면 다음 단수로 넘겨줘야 한다. 변속과 관련된 이 모든 과정을 운전자가 직접 하기 때문에 차량의 상태 변화가 더욱 극적으로 느껴진다. 오르막길에서 아랫단수로 내려가는 것은 자동이나 수동이나 똑같지만 수동은 '내가 했기 때문에' 저단변속의 변화를 더 크게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평범한 성능의 자동차라도 수동변속기 모델이라면 마치 스포츠카를 모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둔하기 짝이 없는 군용차를 몰면서도 스포츠카를 모는 듯한 짜릿함을 느꼈다. 비록 속도는 느려터졌지만 나의 조작으로 인해 차량의 거동이 변화하는 점에서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오토 차량은 컴퓨터가 알아서 다 해주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재미를 느낄 겨를이 없다. 그냥 D에 넣고 엑셀 밟고 조향만 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운전이 마치 게임 같다. 미션을 하나하나 클리어해 나가듯이 운전상황에 맞게 일일이 대응해나가고, 나의 전략과 전술에 따라 상대방의 반응과 승부의 결과가 달라지듯이 내 단수 선택에 따라 차량의 움직임과 속도가 달라진다. 거기다 지배감, 조작감 등의 원초적인 감성도 있다. 운전을 단순히 A지점으로부터 B지점으로 이동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재미로 하는 사람이라면 수동변속기에 충분히 매료될 만하다. 그래서 재미를 추구하는 펀카 지향의 차종이라면 대개 수동변속기를 선택할 수 있다. 고성능만을 추구한다면 최신 자동변속기로 대체될 수 있지만 재미까지 추구한다면 자동변속기가 수동변속기를 따라올 수 없기 때문이다.



7. 급발진으로부터 안전하다


  급발진이 문제되는 최근 들어 수동변속기의 새로운 장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요소다. 급발진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고, 핑계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제조사들도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확실히 모른다. 심지어 급발진 같은 건 아예 없다고 감춰버리기도 한다. 급발진의 원인으로 추측되는 여러 가지 이유들 중 가장 그럴 듯하다고 지지를 받는 건 컴퓨터제어의 오류이다. 예를 들면 스로틀을 14% 개방하라는 명령을 반대로 받아들여 86%를 개방하는 식으로 말이다. 원인이 엔진제어에 있다면 스틱 차량에서도 얼마든지 급발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스틱 차량은 클러치까지 전자조작되지 않는 한 클러치를 밟아 엔진-바퀴 간 동력연결을 물리적으로 완전히 끊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엔진이 미쳐돌아가도 절대 차가 튀어나가지 않는다. 스틱 차량 운전자들은 급제동을 할 때 반드시 클러치를 함께 밟는 게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클러치 안 밟고 급제동하면 시동이 꺼지니까. 물론 자동변속기도 기어를 N으로 바꾼다면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속기에 문제가 있어 조작이 안 된다면 이마저도 효과가 없을 뿐더러, 10초도 안 되는 긴급상황에서 그걸 떠올릴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동변속기는 그 특성상 수반되는 습관 때문에 급발진 상황에 좀 더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실제 급발진 사례도 대부분이 오토매틱 차량들이다. 하지만 위에 언급했듯 기어를 N으로 바꾼다면 급발진을 막을 수도 있으니 급발진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기어를 N으로 바꾸는 상황을 평소에 시뮬레이션해보자. 평소에 해놓아야 비상시에 자동적으로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부산 싼타페 급발진 사고. 너무나 안타까운 사고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 안 하길 바란다.



  수동변속기처럼 과거에 주류였다가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서 사라진 자동차 관련 장비와 기술들은 셀 수 없다. 닭다리 같은 손잡이를 잡고 돌리는 수동식 창문 개폐장치는 파워윈도로 완전히 대체되었고, 꼬챙이마냥 쭉 늘어났던 안테나는 상어지느러미처럼 날렵한 샤크핀 안테나로 대체되었다. 드럼식 브레이크는 최신차량에 장착되면 큰일나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적어도 인터넷에선 말이다... 이에 비해 수동변속기는 사라지지 않고 미약하게나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비록 이제 멸종위기종처럼 되어버렸지만 상용차와 스포츠카 분야에선 아직 나름대로의 입지가 있고, 유럽에서는 아직도 잘 팔린다. 수동변속기는 분명 불편하다. 자동변속기에 비해 모든 면에서 우위였음에도 '불편하고 어렵다'는 이유 단 하나 때문에 결국 자동변속기에 밀려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고, 단순히 살아남은 수준을 남아 소수에게나마 사랑받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전기차 시대가 오면 아예 변속기가 필요 없어지니 자동과 수동 모두 사이좋게 역사의 무대 아래로 퇴장할 거라는 예측도 있다. 하지만 전동화시대가 오더라도 수동변속기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주길 바라는 건 무리한 바람일까. 파워플라자의 예쁘자나처럼 전기차임에도 불구하고 수동변속기를 끼운 차도 있잖아?






(재밌게 보셨다면 하트 한번 부탁드려용 ^^ 좋은 하루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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