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우리나라에서도 소형차가 대세이던 때가 있었다. 바야흐로 르망과 엑셀, 프라이드가 도로를 주름잡던 그 시대일 것이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말이다. 당시 경차는 티코 한 종류뿐인데다가 차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더 안 좋아서 싸고 작다고 무시를 많이 받았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경차 타고 다니면 놀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경차가 나온지 얼마 안된 90년대 초에는 어떠했겠는가. 준중형차도 90년대 초반 들어서 등장하기 시작했고 중형차는 서민들이 편히 타고 다니기엔 부담스러운 가격과 분위기의 차였다. 이런 상황에서 포니 때부터 계보가 내려온, 뿌리깊은 소형차가 전성기를 맞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시대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한국경제를 묘사할 때 자주 인용되는 단어가 있다. '샌드위치'. 치고 올라오는 후발주자와 멀어져 가는 선두주자의 틈바구니에 끼어 입지가 좁아지는 걸 나타내는 용어다. 90년대에 접어들어 2000년대로 향하면서 소형차에 그런 샌드위치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경차는 사회적으로 낮은 인식과 대접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경제성과 각종 혜택의 힘으로 시장을 넓혀갔다. 1998년에 나온 마티즈는 기존의 경제성에 더해 깜찍한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으며, 현대와 기아에서도 경차가 나왔다. 준중형차는 아반떼의 폭발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첫차를 사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데에 성공했다. 소형차와 큰 가격차는 안 나면서 좀 더 여유로운 공간과 옵션, 성능을 갖춘 점이 통했던 것이다. 경제 성장에 따라 중형차 시장도 커졌다. 소득 수준이 올라가며 소형차 살 사람은 준중형차를, 준중형차 살 사람은 중형차를 사고, 싼 차를 찾는 사람들은 아예 경차로 돌아서면서 소형차 시장은 크게 축소되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판매량 감소와 함께 사람들의 관심도 멀어져서 소형차에 대해서는 흥미도,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어떤 차들이 있는지 정도만 알고 있지 별 관심은 두지 않았었고, '첫차로 사고 싶은 차'를 골라볼 때도 소형차는 항상 빠져있었다. 그러나 엑센트를 만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엑센트와의 첫 만남은 군대 가기 직전, 전국여행을 하기 위해서 렌터카를 빌리면서였다. 예산이 별로 없었기에 최대한 작은 차를 빌려야 했지만 레이를 타보고 경차의 주행성능에 실망을 많이 한 뒤였기 때문에 경차를 빌리기는 싫었다. 자연스럽게 소형차로 눈이 돌아갔고, 연비가 우수하기로 소문났던 엑센트 디젤을 빌리게 되었다. 은색의 2012년식 자동변속기 차량이었다. 길거리에서 볼 때는 그저 평범한 소형차에 불과한 엑센트였지만 렌터카회사 직원의 인도를 받아 지하주차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에는 인상이 상당히 좋게 보였다. 아마 내 돈 주고 빌린 차이기에 좀 더 애정있는 시선으로 봤기 때문이리라.


   엑센트는 엑셀의 후속 차종으로서 한국차 최초의 독자개발 모델로 나왔던 차다. 포니가 한국차 최초의 독자모델이라면 엑센트는 100% 국산 기술로 개발된 최초의 독자개발 한국차인 것이다. 1세대 모델이 나온 것이 1994년으로, 당시로서는 신선했던 비누처럼 동글동글한 인상의 차체와 다양한 색상으로 인기를 끌었었다. 국내에서는 1997에 출시된 후속모델에 베르나라는 이름을 물려주고 단종되었으나 해외에서는 계속 엑센트로 팔리다가 2010년에 국내에서도 다시 엑센트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다. 내수명과 해외명을 통일할 겸 인기가 낮았던 베르나의 잔재를 털어버리고 싶었던 현대차의 결정이었다.








   이렇게 해서 프로젝트명 RB의 새 소형차는 옛날에 잘 나가던 선행모델의 이름을 다시 달고 한국 소비자들 앞에 서게 되었다. 그 기대에 부응이라도 한 것일까. 엑센트는 전작 베르나와는 달리 고무적인 성적을 거두며 소형차 시장에서 성공했다. 윗급인 아반떼와 유사한 세련된 디자인, 효율성 높은 디젤 엔진을 내세우며 프라이드를 앞지르고 소형차 시장 1위를 차지했으며, CVT, DCT 등 최신 첨단변속기들을 빠르게 적용해 나가면서 경쟁력을 키웠다. 2013년형부터는 LED주간주행등과 새 디자인의 휠을 달고 있어서 외적으로도 이전 연식 차들과 구분된다.


   처음 엑센트가 나왔을 때부터 들었던 생각이지만 아반떼(MD)와 정말 많이 닮았다. 인터넷으로 사진만 볼 때는 뭐가 뭐인지 구분을 못 할 정도였다. 아반떼가 거리에서 많이 보이고 엑센트도 실물로 보게 되면서 이제는 한번에 구분해낼 수 있지만 처음에는 어디가 다른지 사진을 뚫어져라 관찰하곤 했었다. 아반떼의 디자인이 워낙 완성도가 높은 탓에 그를 닮은 엑센트의 외관도 만족스럽다. 다만 쿠페과 비슷한 날렵한 인상의 아반떼와는 달리 엑센트는 좀 더 통통하고 앙증맞은 인상이다. 차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리라. 색깔에 따라서도 인상이 바뀌는데, 시승차 같은 은색은 꽤 무난하지만 검은색, 빨간색, 파란색 차들을 보면 또 인상이 많이 달라진다.








   실내 디자인 역시 만족도가 높다. 딱히 소형차의 인테리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확실히 경차보다는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물론 차체 크기의 한계 때문에 공간활용에는 제약이 있지만 작은 공간을 제외하면 윗급 차량과 비교해도 크게 불만을 느끼지 못했다. 소형차라 하여 엑센트의 인테리어에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센터페시아다. 처음 사용하는 사람도 별다른 이질감없이 편히 사용할 수 있는 무난한 구성이다. 역시 여기에 불만을 가진 적은 없었다. 3박 4일 동안 시승하면서 실내 구성에 딱히 불평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덩치가 큰 사람이라면 장거리 운행 때 답답함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또한 이 안에서 자는 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하룻밤 자보고 알게 되었다.







   시동을 걸면 진동과 소리와 함께 엔진이 몸을 일으킨다. 귀에 거슬리지는 않지만 디젤 엔진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는 된다. 고급 디젤세단이 아니기 때문에 가솔린차 수준의 정숙성은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형 디젤차에 기대했던 것보다는 꽤 탈 만했다. 시동이 걸리면서 계기판도 켜지며, 아이들링 상태에서는 750rpm 정도가 걸린다. 가끔 주행거리를 확인할 때마다 시동을 켜야 했는데, 이럴 때는 시동을 켜지 않아도 거리계를 볼 수 있는 구형 아날로그 계기판이 그립다.







   뒷좌석은 딱 소형차에 기대할 만한 수준이다. 들어가 앉았을 때 탈 만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리 여유롭지는 못하며, 여기 앉아 장거리를 달린다면 분명 불편해질 것 같다. 스키스루가 없어서 캐빈과 완전히 분리된 트렁크도 소형차에 적절한 수준의 용량을 갖고 있다.







   엑센트 디젤의 심장은 1.6L U II VGT 엔진이며, 시승차는 여기에 4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렸다. 엔진이 윗급인 아반떼 디젤에 얹힌 것과 같다. 더 가벼운 차에 얹힌 U II 엔진은 경쾌한 주행성능과 우수한 연비를 보여준다. 특히 최초 발진시가 아주 만족스럽다. 최고출력 128마력(4,000rpm), 최대토크 26.5kg*m (1,900~2,750rpm)의 엔진은 엑셀을 살짝만 밟아도 튕겨나가듯 가볍게 차체를 밀어붙인다. 속도계도 그와 함께 오른쪽으로 빠르게 올라간다. 덕분에 도심에서 신호대기 후 출발할 때 매우 편했다. 물론 오르막도 거침없이 편히 올라갈 수 있다.







   다만 초기 발진에 비해 중고속으로 갈수록 경쾌함은 떨어진다. 회전수를 올리다가 1,400에서 1,900rpm 사이 구간으로 들어가면 느껴지는 더뎌진 가속과 반응이 답답하다. 때문에 고속도로에서 추월 등을 시도할 때 생각했던 것보다 엑셀을 더 밟아줘야 수월한 발진이 가능했다. 하지만 회전수를 더 높여서 이 구간을 지나면 다시 경쾌한 가속을 이어간다. 120km/h까지는 스트레스없이 올라가며, 140km/h까지는 더디지만 꾸준히 올라간다. 하지만 140km/h 이상으로 쭉쭉 올리는 건 무리였다. 풀스로틀을 한다면 속도를 더 높일 수도 있었겠지만 100km/h 이상 고속에서의 시원한 가속은 앞서 말했듯 120km/h까지인 것 같다.







   가속뿐만 아니라 코너링도 꽤 믿음이 갔다. 미시령 고갯길을 꽤 높은 페이스로 내려가며 핸들링을 해봤지만 불안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비록 한계상황에서 해본 테스트는 아니었지만 일상생활에서 조금 과격하게 밀어붙인다고 흔들릴 만한 코너링은 아니었다. 미시령을 내려가며 사용해본 수동변속 모드도 괜찮았다. 파워트레인과 차체의 전반적인 성능은 큰 불만없이 만족스러웠다.







   소형 디젤인 만큼 연비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연비는 소문대로 정말 우수했다. 고갯길 주행을 포함해서 전반적으로 16km/l 이상은 가볍게 나왔으며, 고속주행에서는 18~20km/l 이상 나왔으리라 확신한다. 기대했던 것보다 연비가 훨씬 좋아서 주유비를 많이 아낄 수 있었다. 전국을 15,000km 이상 달리면서 주유소를 딱 세 번 들렀다. 2012년식 디젤 자동의 공인연비(도심 14.3, 고속 20.4, 복합 16.5)를 생각해보면 '뻥연비'라는 단어는 엑센트 디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연비는 매우 우수했다.








   엑센트 디젤과 함께 여행을 갔다오니 내가 이 차의 매력을 몰라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차는 내가 생각해왔던 대로 그냥 평범한 소형차다. 외관도, 인테리어도, 성능도 무난했다. 하지만 그런 평범함 속에서 찾은 매력이 빛났다. 매일 봐오던 평범한 친구에게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을 때 사람이 달리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무심히 넘겼던 생김새도 차키를 손에 넣고 나서 보니 꽤 매력있게 잘 나왔다는 걸 알았다. 준중형급 1.6L 디젤엔진의 주행성능도 경쾌했다. 특히 연비는 이 차 최대의 매력이었다. 겉만 볼 때는 몰랐지만 알고보니 내 지갑까지 신경써주는 좋은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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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트레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