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동차이야기

말레이시아(사바) 거리의 자동차

by 여만창 2018. 9. 25.

  코타키나발루에 여행을 갔었다. 코타키나발루는 말레이시아의 주인 사바의 주도이다. 말레이시아의 한 주이긴 하지만 말레이시아 본토와는 역사적으로 남남이기도 했고 연방제 국가이다보니 이웃의 사라왁과 함께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진 곳이다. 그러니 코타키나발루에서 본 걸 말레이시아 전체가 그렇다고 일반화시키진 않겠다. 항상 그렇듯 나는 어딜 가나 자동차가 눈에 들어온다. 여행지의 자동차 문화 같은 건 굳이 보려고 안 해도 저절로 기억에 입력된다. 이번 글에선 말레이시아(사바)의 거리와 자동차에 얘기해보려고 한다.







  시내의 도로는 포장 상태가 좀 거칠긴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해서도 크게 손색 없다. 자동차의 빠른 이동을 위한 간선도로와 시내 구석구석을 누비는 지선도로가 혼재해 있는데, 이 때문에 목적지에 가려면 간선도로를 타고 이동해서 로터리 등을 거쳐 지선도로로 빠져야 한다. 그런데 이게 제법 복잡하다. 목적지인 건물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멀리 빙빙 돌아야 하는 일도 다반사다. 건물 앞과 뒤로 통하는 길이 다른 경우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택시 운전사들은 이 길들을 다 꿰고 있으므로 택시를 탄다면 문제가 없지만 혹시나 자가 운전을 한다면 길을 헤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자가 운전은 별로 추천하지 않는 바다. 이곳 사람들의 운전은 꽤 화끈하고 거친 편이다. 교통체증은 러시아워를 제외하곤 그리 심하지 않다.






  문제는 차에서 내려 보행자가 되었을 때다. 보행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맨 처음 사진에 보이는 것 같은 왕복 6차선의 간선도로에 횡단보도나 육교가 없다! 저 멀리 있긴 하지만 수백 미터를 걸어야 하기에 실용성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 넓은 도로를 그냥 무단횡단 해야 한다. 간선도로라 차도 끊임없이 오고 속도도 꽤 빠르기에 상당히 위험하다. 그나마 있는 횡단보도도 위 사진처럼 참 성의없이 만들어져 있다. 신호가 아예 들어오지 않는 곳들도 있다. 인도가 협소하고 없는 곳들도 많다. 전반적으로 보행자가 다니기 매우 좋지 않다.







  교외로는 국도가 뻗어있다. 왕복 2차선뿐인 구간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상태는 우수하다. 따라서 반대편에서 차가 안 오는 틈을 타서 추월할 수 있는 기술만 있다면 운전이 그리 어렵지 않다. 구석구석까지 잘 이어져 있는 듯하다.






  차종은 소형차가 대부분이다. 소형차 천국이다. 말레이시아는 생필품과 식품 가격이 낮은 대신 공산품 가격이 비싸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소형차를 선호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한다. 큰 차보다야 소형차가 상대적으로 저렴할 테니 말이다. 물론 큰 차도 있다. 소형차 다음으로 지분이 큰 차는 픽업트럭이다. 일제 픽업트럭과 포드 레인저가 주로 보인다. 시내나 교외 가릴 것 없이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SUV는 중형급 이상이 많고, 차량의 연식이나 관리 상태 등을 보면 주로 돈 있는 사람들이 타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중대형급의 세단은 잘 보이지 않는다. 승합차는 스타렉스처럼 보닛이 돌출된 차들보다는 원박스카들이 더 많다.


  차들은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새 차들이 많지만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래된 차들도 가끔 찾을 수 있다.(참고로 이 차는 구형 프로톤 사가다.) 우리나라보다는 올드카가 쉽게 보인다. 현지인들이 타고 다니는 버스는 과연 굴러갈까 싶은 정도로 오래된 물건이다.


  또한 이곳 사람들은 자동차 튜닝을 상당히 좋아한다. 휠 정도는 기본이고 이곳저곳에 파츠를 주렁주렁 달거나 배기음을 웅웅거리는 차들이 꽤 보인다. TRD나 타입R 같은 일제 튜닝 브랜드 로고를 붙여놓은 차들도 있다. 튜닝 시장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커보였다. 튜닝쇼 같은 건 서울보단 코타키나발루에서 하는 게 더 반응이 열띨 것 같다.





프로톤 사가(Saga)



페로두아 마이비(Myvi)




  메이커로 따지면 역시 토종 브랜드인 프로톤(Proton)과 페로두아(Perodua)가 제일 많다. 페로두아가 제일 많이 보이고 그 뒤를 프로톤이 잇는다. 말레이시아 현지 국산차답게 많이 보인다. 가끔 가다 토요타 위시나 프리비아 같은 차들이 페로두아 엠블럼을 달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는데, 배지 엔지니어링이나 OEM 생산도 하는 모양이다. 현지 브랜드의 차는 소형차가 대다수이다.





닛산 어반(캐러밴)



닛산디젤 빅썸(삼성 SM510의 원형)



포드 레인저




  현지 국산차 다음으로 많이 보이는 건 역시 일본차다. 일제 브랜드를 모두 합치면 프로톤과 페로두아를 뛰어넘을 정도로 많이 보인다. 말레이시아는 토종 브랜드가 있어서 다른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일본차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다. 동남아 국가답게 일본차가 많다. 종류도 다양하다. 소형차, 픽업트럭, 승합차, 덤프트럭, 세단, SUV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메이커별로도 고루 보인다. 토요타, 혼다, 닛산, 미쓰비시, 이스즈는 쉽게 볼 수 있지만 마쓰다, 스즈키, 스바루는 적다. 경차 메이커로 유명한 다이하츠의 이름이 붙은 트럭들도 굴러다닌다.


  미국과 유럽 브랜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중에선 그나마 포드가 쉽게 보인다. 레인저가 꽤 인기 있는 듯하다. 쉐보레, 푸조, 볼보 등도 진출은 해있지만 거리에서 거의 안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국산차 수준으로 깔린 독일차들도 잘 안 보인다. 벤츠와 BMW 몇 대를 본 게 다다. 전세계 곳곳의 개발도상국과 중진국에서 대중차를 생산하는 폭스바겐도 여기서는 거의 못 봤다. 중국차는 포톤 브랜드의 승합차 딱 한 종류밖에 못 봤다. 하지만 프로톤이 지리의 산하에 들어갔으니 지리나 지리 베이스의 프로톤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랩을 통해 이용했던 페로두아 소형차의 실내다. 이곳도 자동변속기가 대세이긴 하나 가끔씩 수동변속기도 찾아볼 순 있다. 적어도 우리나라보단 많은 것 같다.








  한국차도 있다. 하지만 그 비중이 미미하다. 그나마 일본차가 아닌 외국차들 중에선 가장 많은 것 같다. 당연히 현대와 기아가 대부분이다. 구 대우차는 하나도 보지 못했고, 쌍용차는 렉스턴 한 대를 본 게 전부다. 차종은 쏘나타(YF), 아반떼(MD), 싼타페(TM), 스포티지R, 투싼(2세대와 3세대), 스타렉스, 아토스, 비스토, 프라이드(YB), 모닝, 클릭, 베르나, 카니발, 쏘렌토R 등이 기억에 남는다. 그 외엔 i10부터 i40까지의 i시리즈도 있는데, 이노콤(Inicom)이라는 별개의 브랜드로 팔리고 있다. 현지 협력회사로 보인다. 마쓰다와 BMW도 이 회사와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 스타렉스는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모습이 아니라 동남아 현지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한국차는 이곳에서 대중차 같은 이미지는 아니다. 럭셔리 브랜드까지는 아니라도 대중차 이상의 고급스러운 이미지인 것 같다. 싼타페를 웨딩카로 쓰는 모습을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동남아 시장에서의 사업에 시동을 걸려는 것 같은데, 조만간 동남아에서도 한국차를 일본차만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