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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이야기/시승기

[시승기] 아메리칸 V8, 2020 쉐보레 카마로

by 여만창 2021. 3. 10.

 

여행은 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들을 할 수 있는 기회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음식... 그리고 새로운 차가 있다. 외국에서 하는 자동차여행은 새로운 차를 경험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다. 그리고 기왕 차를 빌릴 거, 최대한 평소에 타보기 힘든 차를 타보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고른 차가 카마로다. 아메리칸 머슬카, 그것도 V8 엔진의 아메리칸 머슬카라니, 좀처럼 타보기 힘든 차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타보기엔 기름값이 너무 부담스럽다. 카마로의 고향이자 유가도 저렴한 미국이야말로 이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기에 최적의 환경인 것이다.

 

 

시승차는 당시 최신형이었던 2020년형 6세대 카마로 SS였다. ‘범블비로 유명했던 5세대의 모습을 전반적으로 잘 유지하고 있다. 차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거의 별 차이 없다. 5세대의 디자인이 워낙 좋았으니 그대로 살린 것 같다. 마치 1세대와 2세대 K5의 관계처럼 말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론 5세대만 못하다는 느낌이다. 뒷모습은 5세대와 다름 없이 여전히 멋있지만 앞모습은 솔직히 못생겼다. 범퍼 좌우 하단 부분이 특히 못생겼다.

 

 

시트 포지션은 스포츠카답게 굉장히 낮았다. 차체 자체도 낮지만 시트도 높지 않고 거의 차 바닥에 착 달라붙어 있다. 운전석에 앉아있으면 마치 바닥에 쪼그려 앉아있는 듯한 느낌이다. 인테리어도 전체적으로 낮아보이게 디자인되어 있다. 보통 센터페시아 위쪽에 위치해있는 송풍구가 이 차는 아래쪽에 있다. 그래서 시각적으로 매우 낮아보인다. 마치 비행기 엔진을 닮은 듯한 송풍구 디자인은 꽤 스포티하다. 리어램프의 모양을 따온 듯한 계기판 커버, D스티어링휠, 속도계와 타코미터 사이에 위치한 4종류의 작은 미터들도 스포티하다. 이 차가 스포츠카라는 걸 굳이 시동을 걸지 않고 실내 디자인만 봐도 알 수 있다. 심지어 패들시프트도 달려있다. 다른 브랜드 차에 달려있었다면 별로 놀라지 않았을 물건이지만 이 차는 쉐보레다. 기어봉에 버튼식으로 수동변속 장치를 달아놓는 그 이상한 쉐보레 말이다. 그런 쉐보레 차에 패들시프트가 달려있다니, 이 차의 성격을 단박에 보여주는 부분이다.

 

대형 캐리어가 있다면 카마로를 타지 말자
30분만 있으면 내려달라고 하고 싶을 거다.

 

다만 실내 공간 활용성은 떨어진다. 우선 트렁크 입구가 너무 좁다. 트렁크 공간은 그렇게 좁지 않다. 하지만 입구가 너무 좁다. 대형 캐리어는 들어가기 힘들다. 결국 캐리어 안의 짐을 일부 빼내고 가방을 압축해서 겨우 집어넣을 수 있었다. 뒷좌석도 좁다. 레그룸은 그냥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이런 차는 원래 뒷좌석이 거의 장식에 가까운 차이기 때문에 그렇게 큰 흠은 아니다. 4명 태울 생각하고 카마로 사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다행히 운전석이나 조수석의 공간은 불편하지 않다.

 

 

짐까지 다 실었으면 이제 야수를 깨울 차례다. 시동버튼을 누르자 V8 6.2L 엔진이 깨어난다. 부와앙하는 소리가 매우 거칠다. 일단 시동이 걸리고 나면 그렇게까지 시끄럽진 않다. 하지만 엑셀을 살짝 밟으면 거친 배기음이 울려퍼진다. 참고로 실내에서 들리는 소리가 훨씬 얌전하다. 밖에서 들으면 아마 저렇게 시끄러운 걸 어떻게 타고 다니나 싶을 것이다. 방음처리 때문에 실내에선 그렇게 시끄럽지 않다. 그냥 딱 듣기 좋은 수준이다.

 

 

본격적으로 주행을 시작했다. 의외로 엑셀 반응이 예민하지 않다. 저속에선 생각보다 굉장히 얌전하다. 시동 거는 소리만 듣고 보면 엑셀을 살짝만 밟아도 팍팍 튀어나갈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시내에서 저속으로 달릴 땐 여느 승용차와 다를 바 없다.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예민할 경우 일상주행이 불편할 것을 우려한 세팅인 듯하다. 페달을 3분의 1쯤 밟으면 본색을 드러낸다. 그리고 페달을 반쯤 밟으면 우렁차게 튀어나간다. 정지 상태에서의 발진 능력도 물론 뛰어나다. 완전히 멈춘 상태에서 페달을 깊숙이 밟으면 몸이 뒤로 제껴짐과 동시에 계기판의 바늘들을 쉴 새 없이 오른쪽으로 꺾인다.

 

엑셀을 밟을 때의 배기음은 너무나도 중독적이었다. 기름을 아끼려면 얌전히 운전하는 게 맞지만 야성적인 배기음이 운전자로 하여금 엑셀을 계속 밟게 만든다. 배기음도 좋았지만 455마력의 넉넉한 출력이 주는 여유도 너무 좋았다. 얌전히 살살 달리다가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야수를 불러내어 속도를 즐길 수 있다. 그것도 발가락 끝에 살짝만 힘을 주는 아주 간단한 동작을 통해서 말이다. 도로의 왕이 된 느낌이었다

 

 

스포츠카인지라 서스펜션 세팅도 단단한 편이다. 노면의 요철이 엉덩이로 느껴진다.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게 그렇다고 해서 승차감이 크게 나쁜 편은 아니다. 몇 시간씩 운전해도 승차감 때문에 피로하진 않았다. 노면이 느껴질 정도로 단단하긴 했지만 출렁대거나 덜컹덜컹거리진 않았다. 차량에 달린 옵션도 꽤 좋았다. HUD 등 온갖 장비들이 다 달려있었다. 트립컴퓨터에 찍힌 평균연비는 27.1mpg, 대략 11.52km/l 정도가 나왔다. 고속주행 위주라 꽤 좋게 나온 것 같다.

 

 

이번 카마로 시승은 머슬카를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V8을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확실히 여유로운 출력은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6기통도 4기통 터보도 충분히 빠르다. 심지어 6기통 터보면 8기통보다 힘이 좋기도 하다. 하지만 큰 것이 주는 심리적인 여유로움과 우월함, 별다른 특별한 장치를 달거나 힘을 쥐어짜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는 확실히 8기통만의 매력인 것 같다. 결국 감성적인 영역이다. 이를 누릴 수 있었던 카마로와의 시간은 참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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