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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이야기/시승기

[시승기] 살아있는 고급차의 품격, 2010 현대 그랜저 Q270

by 여만창 2021. 2. 15.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한때 논란을 불러일으켰었던 그랜저의 광고문구다. 4세대 그랜저인 TG가 바로 이 광고의 주인공이었다. 우리나라에 만연한 물질주의와 황금만능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시로서 교과서에까지 오른 자랑스런(?) 광고였고, 나도 그 광고를 본 기억이 난다. 비록 논란을 일으키긴 했지만 이런 광고가 나왔다는 건 그랜저가 그만큼 확실한 고급차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랜저TG는 이처럼 고급차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굉장히 잘 팔렸던 모델이다. 지금이야 그랜저가 판매량 순위 최상위권에 올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지만 그때만 해도 고급차가 대중적으로 많이 팔리던 시기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TG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고급차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했다.

 

페이스리프트 전과 후의 비교

 

시승한 모델은 2010년식 후기형 '더 럭셔리 그랜저'였다. 연식변경 수준으로 소소한 외관 변경은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확 바뀐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호불호가 조금 갈리는 듯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다. 라이트를 다듬어 우아한 느낌이 더 강해졌다. 다만 여기저기 선이 더해지면서 지저분해진 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은색이나 흰색 같은 밝은 색보단 선들을 덮어줄 수 있는 짙은 색, 즉 검은색이 더 예쁘다.

 

 

인테리어는 깔끔하다. 고급차다운 절제의 미라도 살린 것일까, 쓸데없이 복잡한 조형을 하고 있지 않다. 단순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무난한 형태다. 준대형차답게 실내공간도 넉넉하다. 배구선수급의 거구가 아니라면 불편함 없이 탈 수 있다. 트렁크 역시 넉넉하긴 마찬가지. 세단의 한계상 길쭉한 물건 넣기는 힘이 들지만 앞이 깊어서 부피가 적당한 물건이라면 많이 실을 수 있다.

 

 

시승차는 Q270 모델이었다. V6 2.7L 뮤 엔진에 6단 자동변속기가 탑재되었다. 2.5L 모델이 가장 많이 팔리는 지금과 달리 이 시기엔 2.7L 모델이 제일 많이 팔렸다. 즉, 현행 그랜저는 4기통이 주력이지만 이때는 6기통이 주력이었다. Q270 이외엔 각각 2.4L와 3.3L 엔진을 얹은 Q240과 L330이 있었다. 시동을 걸면 엔진 소리가 잠깐 들렸다가 이내 차분해진다. 고급차답게 정숙하다. 엑셀을 밟자 195마력을 발휘하는 엔진이 회전수를 높인다. 200마력이 조금 안 되는 엔진의 힘은 차체를 이끌기에 충분하다. 엑셀을 깊게 밟으면 속도가 쭈욱 늘어난다. 160km/l를 넘기는 것도 문제 없다. 자연흡기답게 밟으면 밟는 대로 즉시 시원시원하게 가속하고, 6기통답게 미세한 발놀림으로도 섬세하고 정밀하게 컨트롤할 수 있다. 엑셀을 밟는 정도에 따라 부드럽게 조절되는 게 일품이다. 승차감도 물론 좋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단수가 살짝 모자란 게 아닌가 싶은 6단 자동변속기도 아무 거슬림 없이 엔진의 힘을 전달한다. 다만 수동변속 시의 반응이 한 박자 늦긴 하다.

 

연비는 대충 공인연비 비슷하게 나오는 것 같다. 이 차의 공인연비는 10.6km/l. 살짝 부담스러운 연비이긴 하지만 차급과 배기량을 고려하면 크게 나쁜 건 아니다. 타보고 느낀 점은 고급차의 품격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시승 시점 기준으로도 출시된 지 한참 된 차였지만 고급차의 부드러운 주행질감과 차분함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주력이 4기통으로 바뀌고 아랫급인 쏘나타가 더 고급화된 요즘에 나오는 그랜저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겪어본 두 세대 전의 그랜저, 2010년식 TG는 고급차의 품격을 확실히 가지고 있었다. 옛날 그랜저가 이럴진대 현행 그랜저는 어떨까, 호기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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