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의 무법자, 어떤 차가 떠오르는가? 혹자는 무시무시한 성능의 스포츠카들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정작 도로를 누비는 수많은 운전자들이 뽑는 무법자는 봉고, 포터, 스타렉스다. 봉고와 포터는 미드십 엔진에 후륜구동에 과적과 과속을 일삼으며 고속도로에서 군림하고 있고, 허하호 번호판을 단 법인 스타렉스는 '법타렉스'라고 불리며 자기 차 아니라고 마구 몰아붙여지고 있다. 바로 그 법타렉스를 타볼 일이 있었다. 회사 업무상 몰게 된 법인 명의의 진짜배기다. 정확히는 회사가 렌터카회사에서 빌린 차지만. 1차 페이스리프트를 마친 스타렉스 2016년형을 한번 만나보자.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고는 하지만 거의 변한 데가 없다. 그릴 정도만 살짝 바뀌어서 눈썰미 없는 사람은 바뀐지 알아보지도 못한다. 휠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시승차는 알루미늄휠조차 달지 못한 깡통차다. 회사차에 사치란 필요 없다는 거지.
운전석이다. 깡통답게 정말 간결하다. 있을 것만 딱 달려있다. 옵션? 그런 건 여기서 말을 말자(...) 차가 큰 만큼 시야도 높고 넓다. 웬만한 SUV 부럽지 않은 시야가 펼쳐진다. 그렇다고 승용차와 그렇게 크게 다르지도 않다. 그냥 조금 큰 차의 느낌? 승용차만 몰던 사람도 조금 타다 보면 금방 적응할 수 있다.
컵홀더가 있긴 한데, 조수석 위치에 따라서 아예 못 쓸 수도 있다. 조수석을 앞쪽으로 당기면 위쪽처럼 의자에 막혀서 나오지 못한다. 따라서 컵홀더를 쓰고 싶다면 조수석을 뒤로 좀 밀어야 한다. 2열에 앉은 사람의 레그룸이 좁아지는 걸 감수하고서 말이다.
글러브박스는 2단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잡다한 물건 수납하기 좋다. 이외에도 곳곳에 작은 수납공간이 많아서 편리하다.
가운데 등받이를 펴면 3명도 앉을 수 있다. 하지만 웬만큼 체구가 작지 않고서는 못 탈 거다. 뭐, 몸이야 그렇다 쳐도 다리 공간이 너무나도 좁다. 애 하나 앉으면 딱 좋을 크기라 실용성은 별로 없다.
조수석 쪽 발판 안쪽에는 수납공간이 하나 숨겨져 있는데, 여기에는 OVM이 있다. 비상상황을 대비한 각종 공구들을 넣어놓는 공구함이다.
운전석 쪽에는 소화기가 장착되어 있다. 오호? 의외로 안전에 신경 쓰는 모습? 승용차엔 소화기를 넣고 싶어도 딱 들어갈 만한 적절한 공간이 없어서 트렁크에 나뒹구는 천덕꾸러기가 되기 십상인데 이 차엔 전용 수납칸이 따로 있어서 좋다.
간결과 단순함 그 자체인 계기판이다. 이 차는 12인승이라 110km/h 속도제한이 걸려있다. 그래서 계기판이 저기까지밖에 표시가 안 돼 있다. 차에 무슨 이상한 짓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계기판의 3분의 2를 꺾을 일이 절대로 없다.
그럼 승차공간을 한번 살펴볼까? 12명까지 태울 수 있는 코치 모델로서 인원 수송이 주목적이 되는 차다.
후석 승객공간 전경. 2열과 3열의 독립시트 사이로 복도가 나있고, 맨 뒤에 3인승의 4열시트가 있는 전형적인 구성이다.
이렇게 등받이를 다 세우면 9명까지 탈 수 있다. 2열과 3열 양옆 좌석은 장거리도 그럭저럭 탈만하지만 4열은 좀 좁을 것이다. 가운데 등받이 좌석은 말할 것도 없다. 머리받침대도 없으니까.
그래도 컵홀더가 있어서 음료는 들고 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음료컵이 담기는 건 보지 못했고 쓰레기가 가득 담기는 것만 봤다.
좌석 배치에 따라서 2열 공간을 아예 죽여버리고 3열을 리무진처럼 넓게 만들 수도 있다.
좌석을 모두 펼친 상태에서의 짐 공간. 공간이랄 게 거의 없다. 우산 같이 긴 물건만 바닥에 가로로 놓일 수 있을 뿐이다.
4열을 접으면 그래도 쓸만한 짐공간이 생긴다. 다만 깊이가 깊지 않고 높이만 높은 형태의 공간이라 활용에 제한이 있다. 박스를 쌓는 용도로 쓴다면 상관 없겠지만.
4열을 접은 상태에서 실내에서 본 모습
4열에서 앞을 본 모습이다.
좁은 보닛 안쪽 좁은 엔진룸엔 2.5L 175마력 디젤 엔진이 자리 잡고 있다.
터보도 수줍게 숨어있다. 안녕?
연비는 4등급 9.8km/l. 실주행연비는 이거랑 거의 비슷하게 나왔던 것 같다. 무려 9명을 태우고 고속도로 위주로 달려서 10km/l 안팎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성능은 필요한 만큼 뽑아준다. 혼자 타든 9명이 타든 막힘이 없다. 저속에서도 고속에서도 속도를 원할 때 좀 밟아주면 금세 반응한다. 그렇다고 너무 넘쳐나서 짜릿할 정도는 아니다. 딱 스트레스 없이 몰 수 있을 정도, 그 정도 수준이다. 일상적인 용도라면 전혀 불만 없을 성능이다. 짜릿하게 뽑아주는 맛은 없지만 디젤엔진답게 묵직하고 꾸준하게 밀어주는 힘이 꽤 든든하다.
다만 변속기는 좀 아쉬웠다. 엔진은 준수한데 이 엔진의 성능을 다 담아내기엔 변속기가 좀 부족한 느낌이었다. 변속충격 등 딱히 변속기의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좀 더 영민하거나 단수가 더 많았다면 엔진의 힘을 좀 더 잘 활용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분명히 엔진은 여력이 있는데 기어비가 안 맞아 속도가 잘 안 나는 지점이 있다. 수동변속 모드가 있긴 하지만 한계가 있다. 수동변속기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어째서인지 수동변속기 모델은 엔진 출력이 140마력이라 스타렉스를 구매하는 대부분의 고객들은 힘도 좋고 편의성도 좋은 자동변속기를 선택하고 있다. 덕분에 수동변속기 사양은 거의 멸종위기다. 판매단가가 더 높은 자동변속기 모델 판매를 늘리려는 악의적인 세팅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솔라티에도 170마력 디젤 엔진에 6단 수동 꽂아주면서!
12인승이라 110킬로 리미트가 걸리는 바람에 법타렉스의 명성을 직접 누리진 못했다. 시속 110km 이상으로 절대 밟을 수 없게 막혀있다. 그래서 아무리 밟아봐야 110km/l를 꺾을 수 없다. 엑셀을 풀스로틀로 밟든 내리막길에서 탄력주행을 시도해보든 마찬가지다.
차 자체가 크다보니 지상고도 일반적인 세단보다 높아서 비포장도로를 좀 더 부담없이 달릴 수 있다는 점이 의외의 장점이었다.
국민 승합차인 스타렉스를 타보니 딱 자기 역할만큼 잘 해내는 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짐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넉넉한 공간을, 사람을 많이 태울 일이 있는 사람들에겐 최대 12인승의 공간을 제공한다. 부족함 없는 넉넉한 힘에 승차감도 나쁘지 않다. 현행 2세대 스타렉스가 2번째 페이스리프트를 거쳐가면서 11년째 장수하고 있는 데에는 경쟁모델이 없다는 점도 크지만 차 자체의 상품성이 좋다는 점도 크다고 생각한다. 인원수송 면에서 보자면 카니발이 경쟁상대가 될 수 있지만 둘은 목표로 하는 소비자층도 좀 다르고 용도도 좀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경쟁상대라고 보긴 힘들다. 영업/상용 용도 위주인 스타렉스와 달리 카니발은 레저/승용 용도 위주이기 때문이다. 만약 패밀리카로 둘 중 뭘 고를 거냐고 묻는다면 스타렉스를 고르기엔 좀 망설여지겠지만 사업 파트너로 뭘 고르겠냐고 묻는다면 스타렉스를 자신 있게 선택할 수 있다.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든든한 파트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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